군소리
합리적 근거
-마당-
2023. 10. 5. 12:12
"이러면 안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보고 싶다'란 노래 가사다.
적어도 곡기 끊고 칵
죽고 싶을 만큼,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더 보고 싶은 후에
'쪼매 보고 싶네.'라고 하면
근그이 믿음이 갈랑강 몰라도.
이렇게
보고 싶다는 말을 남용하거나
남발하면 곤란하다. 거기다
보고 싶다는 말 앞에
'진짜'라는 말까지 앞세워 놓으면,
이게 진짜로 진짜 보고 싶은 것인지
가짜로 진짜 보고 싶은 것인지, 고개를
짜붓거리지 않을 수 없다.
보고 싶다는 말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자, 며칠 뒤 집으로 돌아와 그러키나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치자.
쎄리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고
온 데 부비고 만지고 물고 빨고 꽁치고...
그래도 모자랄 낀데,
"잘 지냈어예? 별일 없었어예?
내가 없으이끼네 살이 좀 빠진 것 같네."
강세이뿔이라캐라.
보고 싶었다는 심증적 물질적 근거가 오데 있는데?
'진짜 너무 보고 시퍼'떤 맴은 오데로 달나삤는데?
마 됐고, 언자 부텀은 내가 왜 붙어 사는지,
뭐가 아쉬워 이 할마씨한테 밍을 띠바치고 사는지
그 근거나 함 찾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