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窟)
오랜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부탁이 담긴 메시지였다. 햇수로 따지면, 두 손으로는 모자라 발가락까지 보태야 할 만큼 긴 세월 동안, 정작 부탁이라 해봤자 한 손도 채 꼽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쩌자고 그 귀한 부탁이란 걸 해 온 것이었다.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의 심정은 여러가지다.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 경우, 들어주더라도 못내 찜찜한 경우, 들어줘도 그뿐 아니어도 그뿐인 경우, 두말없이 들어주고 싶은 경우, 때론 부탁을 해줘서 오히려 고맙기까지 한 경우... 부탁이란 건 별게 아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가에, 진귀한 동굴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아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사전 답사를 해 줬으면 하는 것이었는데, 오랫만의 부탁 치고는 ..
2023.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