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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2026. 7. 23.
내수면 공원 봄이 한창일 때 진해 내수면 생태 공원에 들렀다.우짜다가 가끔 함안(그래픽), 마산(8월), 창원(마당)이 어불릴 때가 있는데이날은 내셔널동네그래픽 님이 빠진 날이다. 인물과 풍경의 작품 사진 하면 그래픽 님,팬들로부터 '팔월류'란 고유 브랜드로 불리기도 하는,독특한 감성 사진의 오거스트 8월 님. 사진기를 어깨에 오래 둘러메었다거나나이가 많다고 해서 솜씨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두 양반을 통해 절실히 느낀다.그래서 두 사진가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늘 남는 장사다. 잘 베끼는 재주가 없으면온 데 싸돌아다니는 부지런이라도 떨어야 한다.뭐든 뷰파인더를 자주 들여다 봐야 서나곱쟁이라도 늘 것 아닌가. 그렇게 볼 때,진해 내수면 공원을 곁에 끼고 사는 건 복이다.차로 반 시간도 채 안 걸리는.. 2026. 6. 10.
아기다리 고기다리 대구 수성구에 감성 사진을 잘 찍는 분이 있다.아주 오래전에 두어 번 함께 출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드문드문 SNS 소통만 하고 있다. 이분의 사진 중에 내 눈을 가장 홀렸던 것은 정물 사진이다.그중에도 꽃을 많이 찍었는데, '호야' 사진은 일품이었다.꽃의 생김처럼 보석 같은 느낌을 고대로 잘 담아냈다.나도 그렇게 촬영해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꽃을 찍으려면 모델이 있어야 한다.즈그마이에게 물어 보니 우리 집에도 호야가 있다고 했다.꽤 오래 길렀는데 꽃 피울 생각을 않는다고 심드렁히 말했다.그때부터 호야 화분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영양제도 주고 지지대도 세워주는 등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애를 썼다.그러기를 십수 년, 이사도 두어 차례 했다. 걸핏하면 지인들에게, 심지어 대구 수성.. 2026. 4. 28.
벚꽃 끝물 지난 4월 4일, 진해 군항제 폐막을 하루 앞둔 날,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안민고갯길을 걸었다.봄철 안민고개의 벚꽃길은 꽤 유명하다.사열하듯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는 대부분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예전에는 군항제 기간 동안 자동차가 일방통행으로 고개를 넘었지만,몇 해 전부터는 아예 차량이 다니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간간이 지나는 행사 진행 차량만 있을 뿐, 벚꽃도 막바지인데다가는비까지 내리는 통에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근 8km에 이르는 고갯길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통째로 빌린 것처럼아주 편하게 걸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아풍경을 휴대폰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그렇지만 사진이 뭐 대수인가. 일방 꽃 눈이 흩날리는 고갯길을한적하게 걷는 기분을 도대체 어디에.. 2026. 4. 18.
노란 꽃 봄이라 선언하기엔 왠지 좀 이르다고 느낄 즈음어김없이 복수초는 핀다.이 노란 꽃이 피기 전에 봄바람을 맞아 본 적은내 평생에 한 번도 없을 것이다. 흔치 않은 피字 웹 성을 가진 누부님으로부터 기별을 듣고 복수초를 보러 갔다.암남공원.여러 차례 가 본 곳인데도, 꽃 피는 골짝을 찾지 못해 헤맸다. 마침 나보다 몇 더해 보이는 늙수그레한 등산객을 만났다.정중하게 여쭈었다."해마다 이맘때면 이 근처에 노란 꽃이 피던데 혹시 어디쯤인지 아십니까?"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다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꼬나보면서,"노란 꽃은 무신 노란 꽃, 복수초지 복수초. 저게 많이 피어 있구먼." 그러니까, 행색을 보아 하니 꽃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 같은데복수초란 이름도 몰라 노란 꽃이니 뭐니 운운하는 꼴이몹시 같잖아.. 2026. 4. 3.
노래 자랑 경연 최근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았다. 경연자 중에 이채로운 참가자가 있었다.그녀는 스무 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노래를 잘했다.여기서 노래라는 것은, 목소리뿐만 아니라제스처나 감정 표현, 무대 퍼포먼스를 포함할 것이다.어릴 때부터 유명 오디션 프로를 섭렵하다시피 했다는 것을그의 영상 알고리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승자를 가리는 날이 되었다.Top4라는 타이틀이 붙었으니 하나같이 열창했고노래 실력이 모두 뛰어난 건 맞았다.그 중에서, 적어도 내 안목으로 볼 때그녀의 노래는 실로 절창이었다.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완벽에 가까웠고심사단의 점수도 단 1점이 부족한 만점이었다.그럼에도 우승의 몫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심사 제도의 맹점 여부를 떠나내국인의 자존감으로 칠 때,그녀가 이방인이란 이유로 우승.. 2026. 1. 9.
액땜 살다가 죽을 고비가 몇 번이나 있었는가 되짚어 보니 아무리 뒤적거려봐도 딱히 내세울 게 없다.평탄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단지 큰일 날 뻔한 일은 더러 있었다. 책가방 시절, 이러저러해서 농땡이를 많이 부렸고나중에 정신 차려보니 '뻰찌쟁이'가 되어 있었다.변압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다닐 때였다. 땜쟁이 학교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고,전기를 배웠다고 하지만 실무 경험이 일천할 때였다. 제품 출하를 앞두고 완제품 시험을 하는 부서였고,부서 특성 상 철야를 밥 먹듯 했다.변압기 온도가 얼마나 상승하는지 시험하던 어느 날 밤,선배들이 하던 측정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야식을 먹고 자정이 지나 근무조의 선임이 수면실에 들어간 사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시험 현장으로 갔다. 시험 구역은 안전사.. 2026. 1. 2.
세밑에 연말연시는 사람을 무단히 달뜨게 한다.평소에는 세상에 없는듯이 지내다가연말 인사나 새해 덕담을 핑계로 은근히소식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사 오고 이 년이 지나서야집 근처 길가에 우체통이 있다는 걸 알았다.우체국 근처면 몰라도, 요즘 세상에 우체통이길거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어쩌다 공중전화기가 놓인 부스를 보면저 전화통이 제대로 기능이나 할까 궁금하듯이, 우체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고,들어앉은 우편물이 제대로 수거가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은 동네 우체국에 물어봤다.매일 거르지 않고 수거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그 바쁜 집배원 아저씨가, 열 때마다 텅 비었을 때가훨씬 많았을 우체통을 일일이 열어 보았을까 하는심증적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랬거나 말았.. 2025. 12. 23.
살 만한 세상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 창원의 모 대학교에 들렀다.학교 어느 한 건물에 공급되는 전기의 품질이쓸 만한지 어떤지 진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건물 관리 소장님을 만나야 했다.소장님이 나타나셨다.나와 비슷한 연배이거나 하다못해 지천명을 넘긴분이겠지 했던 예측이 사정없이 빗나갔다. 서른 턱걸이나 했을까 싶은,남자가 아닌 소장님이었다.사람을 두고 이런 표현이 결례일지 모르나아주 '신박'한 케이스였다. 해야 할 일을 두고 얘기를 나눠 보니어지간한 전문가 못지 않았다.빈틈이 없었다.친절하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전원품질분석'이란 일을 마쳤다.장비를 걷어 챙기고 돌아올 참이었다.주차장까지 나와 인사를 건넸다.수고하셨노라고.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겨울 하늘 같은 맑고 쨍한 목소리였다.며.. 2025.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