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글/Poem15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 시는 낮에 읽어도 안 되고 밤에 읽으면 더 안 되고 맨 정신에 읽어도 별수 없고 한잔 걸치고 읽으면 더 난감해지는 ......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시다. 거가 어데라고 휴가를 오신단 말이고 아무리 ~면이라는 가정을 앞세워도 그렇지 설령 그 ~면이 사실이 됐삐리 가지고 오신다 치자 5분만 가지고 되겠나. 얼른도 없지. 울매나 보고 싶었.. 2023. 11. 26. 시(詩), 부질없는 시(詩) / 정현종 시(詩), 부질없는 시(詩) / 정현종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죽음으로 죽음을 사랑할 수 없고 삶으로 삶을 사랑할 수 없고 슬픔으로 슬픔을 슬퍼 못하고 시로 시를 사랑 못 한다면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랴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 발자국도 없다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저 혼자 아름답다. - 시선집 (민음사, 1974) 이 시를 난 잘 모르겠다. 단지 ......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 아무 발자국도 없다 ......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 저 혼자 아름답다. .. 2023. 11. 5. 새와 나 새와 나 / 하룬 야히아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2023. 10. 8. 가을 / 송찬호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 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 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 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 2023. 10. 7. 바닷가 마을 / 오규원 바닷가 마을 / 오규원 누워 있는 어미 개의 젖꼭지에 매달려 젖을 빠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작은 배들이 나란히 바닷가에 매달려 있다 어떤 배는 젖을 다 먹은 강아지처럼 꾸물꾸물 몸을 돌려 다시 바다로 나가고 젖을 먹는 새끼들 사이로 다른 새끼가 끼어들 듯 어떤 배는 배와 배 사이로 파고 들어와 몸이 편하게 누울 수 있을 때까지 꿈틀거린다 동시집 『나무 속의 자동차』 2023. 9. 1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