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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의문 없는 일 패

by -마당- 2024. 4. 20.

 

젊었을 때 나는 무척 얘볐다.

입이 밭았기 때문이다.

군대 갈 무렵엔 무려 백 Kg의 절반에 그칠 정도였다.

이삼 Kg만 적으면 체중 미달로 현역병으로

입영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었다.

당시, 장래 즈그마이 될 공산이 큰 사람이 젙에 있어서

그리 함 해보까 하는 유혹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기필코 조국에 몸을 바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입영 열차에 올랐다.

 

터닝 포인트는 전역 이후에 찾아 들었다.

제대한 후 지금까지 나는 입맛을 잃어 본 적이 없다.

본래 입맛이 없었기 때문에 잃었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지만

아무튼 제대 후로 식욕이 왕성해 진 건 사실이다.

몸살 감기에 시달려도,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먹는 건 평소와 다름없었다.

국방부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나이 들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 식성이 변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입맛이 펄펄 살아 있는 나에 비해

즈그마이는 입이 짧다.

짧아도 많이 짧다. 어떨 땐 이슬만 먹고 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휘적휘적 내 앞을 지나치는

즈그마이 모습에 수정체의 두께를 맞추면,

내가 무슨 택도 없는 생각을 하는가, 하고

단박 각성하게 된다.

 

입이 짧은 데도 불구하고 즈그마이가

한결같이 유지하는 게 하나 있다.

체형이다.

처녀 적에는 그냥 토실토실했고

중년에는 적당히 토실토실했고

지금도 중년 때와 근사하다.

'토실토실'이란 사전적 의미는,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통통하게  모양'을 말한다.

恐처가라서 굳이 적확한 뜻을 들춘 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즈그마이가 한결같은 체형을 유지할 때

나는 한결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입이 짧아, 아까시 잎사귀 서너 넙데기만 먹어도

배가 찰 것 같은 토까이 같이, 음식이라고는

서나곱째이밖에 안 먹고도 '아, 배 불러."를 연발한다.

입출력 공식에 대비하면,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은 사람 같이 피골이 상접해야 옳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이 문제를

수소문도 해봤다.

그 결과 두 가지로 나뉘었다.

타인들은,

 

"말도 아이다. 뭘 무도 묵겠지."

 

즈그마이는,

 

"안 무도 찌는 체질, 물 묵고 자서 띵띵 부우모

그기 살이 되삔다 아입니꺼"

 

하여튼 불가사의한 일이다.

 

 

 

 

식성 좋은 나는 집밥도 좋아하고

배달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입맛도 그렇잖은데 뭐 하나 시키뭅시다."

 

춘하추동 찰진 입맛을 장착하고 사는 내가

애먼 입맛을 들먹이며, 걸핏하면 꺼내는 말이다.

즈그마이는 내가 발의한 배달 음식을

깨지락깨지락 드시기는 해도 웬만해서 자기가 먼저

시켜 먹자는 말을 안 한다.

 

그랬던 즈그마이가 어제

귀가 번쩍 띄는 말을 했다.

 

"오늘 치맥이 땡기는데..."

 

듣는 순간 내 청각이 잘못 됐나 싶었다.

바로 얼마 전, 귀 때문에 난생처음

119에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여파인가 싶기도 했다.

평소 가뭄에 고매 싹 틔우듯 어쩌다가,

'맵싸한 콩나물 없는 뽈찜'이 먹고 싶다는 말은 한 적이 있어도

치맥은 듣느니 처음이었다.

뜸들일 이유가 어디 있나.

배달 어플을 잽싸게 열어 주문했다.

꾸브라꼬 두 마리 치킨.

매운 우동 면 하나 추가.

 

군침을 서너 번 살킬 즈음 차임이 울렸다.

치킨이 왔다.

맥주에 치킨, 아니 쏘맥에 치킨.

말해 무엇하리. 꿀맛이 따로 없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와

젙에 앉아 한 젓가락 거들어도 모를 지경이다.

 

우리집 통닭 식탁에서는

고유하다시피한 루틴이 있다.

 

"이거 당신 드이소."

 

닭 날개 부위를 내게 내밀며 즈그마이가 늘 하는 말이다.

그리고 항상 이 멘트가 뒤를 이었다.

 

"이거 들고 훨훨 나이소."

 

통닭 먹을 때마다 거르는 적이 없다.

어쩌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날개를 권하면

 

"마 됐심더. 나는 안 무도 되이끼네 당신이나

마이 잡숫고 훨훨 뜨이소."

 

훨훨 날아 가라는 말에는, 몇 줄로는 요약이 어려운

모호한 뜻이 담겨 있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자유롭게 온 데 떠돌면서 당신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이녁이 온 데 떠돌아다니면 나도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나 하는

역설적 의미도 조금 깃들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어제는 달랐다. 

어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멘트를 날렸다.

예의 그 날개 부위를 내게 들이밀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이거 드이소. 이거 잡사도 아매 쉽지 않을 꾸로.

 전에는 모르지만 인자 배가 그리 남산 만 해가지고 우예 날끼고.

 택도 없지. 이거 드시고 날든지 말든지 마 알아서 하이소."

 

<억수로 맛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영 벨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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