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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그냥 놔 두이소.

by -마당- 2024. 3. 29.

 

 

 

 

근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냥 놔 두이소. 좀 있다 내가 하께예."

 

내가 주방 기물통에서 뭔가를 하고 있고, 즈그마이는

목하 TV에 빠져 있을 때 주로 듣는다.

 

예전에도 설거지쯤이야 자주 거들긴 했지만,

반백수 직위를 거머쥐고부터 좀 더 잦아졌다.

 

즈그마이는, 내가 정짓간에서 얼쩡거리면 왠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없는 행핀에 사발이라도 깨 먹을까 봐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면, 신성한 자기 영역을 침범 당할 것 같은

은근한 불안감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냥 놔 두이소. 좀 있다 내가 하께예.", 하도 그러 쌓길래

한 번은 그냥 놔 둬 봤다. 그랬더니,

에엔충, 아나 곶감아~였다.

 

흰머리 늘고부터 말만 앞세우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심지어 부려 자시려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집안일 수십 년이니 질릴 만도 하시겠지.

나도 월급 받는 일 수십 년 해 봐서 웬만히 알 것도 같다.

날이면 날수금 같은 일을 거푸하는 것은

그리 재밌을 일이 아니란 건 누구나 잘 안다.

 

요즘 가끔 해보는 집안일, 얼마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은근 재밌기도 하지만, 매일 하라고 하면 지레 물려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그렇다.

수십 년 동안 맨날 똑같은 일을 해 온 것은

즈그마이나 나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이제 나는 현역에서 물러나 조금 한가한 일을 하고 있는 반면

즈그마이는 변함없이 집안일을 하고 있는 입장이고 보면

따져볼 계제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매일 출근하는 일도 아니고 하니, 이제 집안일은

즈그마이한테만 온통 떠맡기지 말고, 틈 날 때마다

겨끔내기로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러다 철드는 거 아인강 모리겠네. 벌써 그라마 안 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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