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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밥상머리 이바구

by -마당- 2024. 6. 9.

 

호박잎에다 깻잎에 김치를 곁들여 아점을 먹었다.

밥을 입에 떠 넣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이파리 김치를 밥 위에 김처럼 펼쳐 쌈 싸듯

큼지막이 말아 입이 미어지도록 욱여넣는 것이다.

밥 따로 김치 따로 먹어도 맛은 거기서 거기겠지만

심리적 미각을 무시할 수 없어 그렇게 쌈을 싸서 먹는다.

이런 식사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즈그마이는

걸핏하면 간섭한다.

 

“앞으로 며느리 보면 절대 그래 묵지 마이소.

제발 좀 칼클케 드이소.” 라며.

 

밥과 찬그릇 중간에 매운생선잡탕이 놓였다.

잡탕이라 한 까닭은, 매운탕으로 조리하면 맛날 생선들만

골라 넣어 끓이는 게 아니라, 제수 음식으로 나눠온

자반이나 전유어, 만두, 동그랑땡 할 거 없이 몽땅

집어넣어 끓이기 때문이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느끼고 싶어, 그리 끓이지 않았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으나 그게 통할 즈그마이가 아니다. 그런데

말이 잡탕이지 이게 먹으면 또 꽤 먹을 만하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유별나게 짜고 매운 국물을 좋아한다.

또 입천장이 벗겨지거나 말거나 펄펄 끓는 뜨거운 국물을

좋아한다. 먹다가 식으면 다시 데워 먹기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뜨거운 국물을 퍼먹을 때마다,

‘어- 시워언하다.’는 탄성을 쏟아냈다.

특히 ‘어~~~’라는 감정 감탄사를 조금 과하게 내뱉었다.

내가 생각해도, 더도 덜도 아닌 딱 주책스러운 할바씨

밥상머리 짓인 것 같아서 즈그마이가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자진 납세했다.

 

“인자 아아가 장개도 가고 했으니끼네, 며눌아 앞에서

이래 소리내면서 무모 안 되는데...”

 

그게 말이라고 하냐는 듯 즈그마이가 거든다.

 

“당연하지예.”

 

밥 먹을 때마다 쩝쩝거리거나 밥그릇 입술에 발갛게

김칫국물을 묻힐 때마다 즈그마이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밥 물 때도 그렇고, 양치할 때 카악 하는 소리도 쫌 내지 말고...”

 

슬슬 또 시작할라 쿤다.

 

“알았소. 알았으이 엉가이 쫌 하소.”

 

“엉간하기는, 며느리도 그렇지만 내 앞에서도 그라마 안 되지예.

곁에 있는 사람도 에럽게 알 땐 에럽게 알아야지... 나가 적은 것도 아이고...”

 

뭐라고 몇 마디 더 반박하려고 달싹달싹거리던 입을 꾹 다물고 밥만 퍼먹었다.

죄 없는 김치 이파리만 거칠게 째다가, 심기가 불퉁하다 보니

젓가락으로는 부족해 손꾸락까지 보태 찢었다.

며느리를 보았다고 하나 여생에, 멀리 사는 아이 네와 밥을 몇 번이나

먹게 될까. 하지만 시어미 입장에서 물색모르는 염감이 며늘아기에게

책이나 잡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다그치는 것일 게다.  

 

TV에서는, 참견도 전지적으로 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노갑을이가

김치로만 부족해, 진짜 아무 죄 없는 예능인 한 친구에게만 험담을

퍼부었다. 평소 입이 싸서 비호감으로 여기던 연예인이었는데,

내가 뭐라든 그가 듣진 못하겠지만 무단히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러는 사이 냉장고 곁으로 간 즈그마이가 포도주 잔에 캔맥주를

알맞게 따라 자기 앞접시 옆에 놓았다. 전에는 한잔하까예? 하는

표정으로 예비 동작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마 드러내놓고

그러는 것 같다. 술을 가르친 내 탓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또

은근히 밉상이다.

 

“당신도 한잔 따라 디리까예?”

 

“마, 됐소.”

 

됐다라고 한마디로 자른 건, 앞에서 면박 받은 뒤끝은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들어 그 맛있던 술맛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 짬치서 말을 거두었으면 본전은 했을 텐데, 맨날 하던 실수를

또 답습했다.

 

“당신 덕에 술맛도 별로고 이거 저거 다 벨로구마.”

 

“술맛 안 땡기는 거는 바람직한데, 내 때민에 다른 게 벨롤 끼 또 뭐 있다고...”

 

“허, 이 사람 보소. 사람이... 오데 술맛만 땡기고 안 땡기고 한다 카등강.

언자 쪼그랑 할마씨가 다 돼 나나이 아무 생각도 엄째. 사람이 집에 있디 말디

낮인동 밤인동 분간도 안 되고... 쯔쯔 당신은 언자 다 된기라, 다 살은기라.”

 

“하이쿠 참 모리는 소리 하시네. 나는 요시 살던 중에 젤로 재밌거마는.

시간이 우예 가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문제라고는 하앙개도 엄꺼등요.

무다이 자기가 못마땅하이끼네 씰데없는 소리만 해쌓고... 키킥-”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쭙잖게 말 꺼냈다가 나만 죽사발 될 것 같아

그냥 함구하고 냅다 숟가락질만 해댔다.

달그락 달그락 밥그릇 밑바닥이 보일 즈음, 즈그마이가

입으로 들어가던 내 숟가락 위에 시망스런 표정으로 한 마디 얹는다.

 

“밥 좀 더 주까예?”

 

마치 얼라 달개듯이, 아니면 힘 내라고 어깨 두드리듯 하는 말투다.

 

“마 됐소. 씰데없이 밥만 마이 무 가지고 오데 쓸라꼬.”

 

숟가락 놓고 물컵을 챙겨 내 방으로 오는데, 즈그마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팔분음표 콩나물 대가리처럼 팔랑팔랑 춤추듯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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