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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간만의 축하

by -마당- 2024. 10. 22.

 

 

 

즈그마이가 지인들과 하루 외박 나들이를 다녀 오는 날,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집 밖에서 띵가띵가 뒹굴고 있었다.

 

안사람이 집을 비우게 될 때 바깥사람은 대개

두 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나뉠 것이다.

뭔가 불편하고 허전하고 에꾸리가 시린 것 같은 부류와

이게 무신 떡이고, 간만에 숨 좀 쉬겠네, 까지는 아니더라도

괜히 개미 궁뎅이만큼 입술이 찢어지고, 무다이 가슴이 아늑해 지면서

뭘 하지, 뭐 하면 좋을꼬,를 되새기는 부류...

 

 

 

벨렐렐레- 벨렐렐레- 휴대폰이 울려서 액정을 보니

'즈그마이' 란 이름이 들어앉아 계셨다.

 

"오뎁니꺼?"

"- 밖인데 당신은 오데요?"

"집에 오니 사람이 엄써서..."

 

예정보다 일찍 귀가했나 보았다.

쌔고 쌘 게 시간인데 뭐러 이리 일찍 오셨는고?

게다가 용문사가 있는 동네에 아난틴가 뭔가에 갔으면

볼 데도 많고 놀 데도 많고 맛난 것도 많을 낀데 만다꼬?

글타고 씨어마씨 끈티 자슥이 얼푼 보고잡아서 그런 건

꿈에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일 낀데 뭐다러?

 

"그나저나 축하할 일이 생깄네예."

"축하? 뭐 좋은 일이라도 있소?"

 

 

 

오랜만에 축하의 말을 들었다.

그 축하는, 내가 우편함을 먼저 열어 보았더라면

듣지 않아도 될 멘트였다.

 

... 106031...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대리 광양 램프 구간...

... 제한 속도 17km 초과...

 

'과속 위반 딱지'

나는 도로교통법 제173항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어 있었다.

아뿔싸! 거기에서 끊겼구나.

 

 

 

친구와 얼마 전 제주에 갔었다.

배편으로 완도에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과속 카메라가 있던 곳은, 고속 도로와 일반 도로의 구분이

모호한 길이었다.

고속도로인 줄 알았는데 과태료 스티커를 받고서야 알았다.

일반 자동차 전용 도로였다는 것을.

제한 속도 80km, 주행 속도 97km, 초과 속도 17km...

 

작금의 나는 교통 법규도 잘 지키는 편이고

어지간해선 과속도 하지 않는다.

십이륙 터진 해에 민허증 따서 소위 피가 끓는다는 시절에는

좀 밟긴 했다. 이른바 Y영역 언저리를 즐기기도 했지만

연해 그랬다간, 즈그마이 머리에 졸지에 삼베 삔을 꽂게 만들까 봐

이제는 거북이 등에 올라탄 듯기 굼실굼실 댕긴다.

 

 

 

오늘 TV 채널을 돌리다가, 퀴즈를 맞추면 그 자리에서

빳빳한 현금 100만 냥을 주는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았다.

암행 단속을 하는 경찰관이 나와 있었다.

과속이나 난폭 운전을 일삼는 운전자가 많아

하루 단속 건수가 100여 건이나 된단다.

내가 쎄리 밟고 다니던 시절에 이런 단속이 없었기 망정이지...

 

 

 

 

방송을 보는 동안 억수로 쬐끔 부러웠다.

암행 단속 차량은 속도 제한에서 자유로운 특례를 받는다고 한다.

무지막지 겁나게 달려도 된다는 얘기렸다.

무려 266km/h로 내빼는 독일제 빠르쉐를 뒤쫓아

현장에서 검거하는 장면도 있었다. 와이구!

 

모르긴 해도 1초에 70m를 넘게 쏜다는 얘긴데 그 정도로 달리면,
말 열 마리가 이끄는 힘의 펌프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될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이 그걸 다 감당하지 못해 차 똥구멍에 달린 머플러로 뿜어져

고속도로 온 길바닥에 도파민이 주아악 깔렸을 것 같다.

260이라면 인제 스피디움 서킷에서나 있을 법한 속도다. 그런데

공도에서 그런 짜릿한 만행이 저질러지다니, 생각만 해도 지린다.

 

 

 

나는 한 주일에 한 번 격으로 업무차 길을 나서면

3~400km를 운행하게 되는데, 암행 차량은 하루에

4~500km를 주파한다고 한다. 암행을 하면서 하루에

천 이삼백 여리를 운행하는 것은 내가 일하면서 다니는

천 리길 정도와 꽤 닮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세월아 네월아 규정 속도를 어기지 않으면서

쉬엄쉬엄 기어다니는 반면, 암행 차량은 도로 정황을 살피면서

가만히 움직이다가도 상황이 발생하면 핑비 총알 같이

다이내믹한 운행을 할 것이다. 매력적이다못해 이 얼마나

매혹적인 드라이빙이란 말인가.

 

 

이걸 버킷 목록에 줘 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직업을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설령 연식이

된다고 해도 경찰이란 직업을 가지려면, 옛날과 달리 지금은

신림동 고시촌이나 노량진 공시촌에 붙박여 몇 년 간

머리띠 두르고 생 똥을 싸도 될까 말까 할 낀데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긴가 말이지.

 

그냥 진정하고 우야든둥 도로교통법이나 잘 지키면서

딱지나 떼이지 않고 그저 모범적인 선량한 노인네나

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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