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안팎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아
즈그마이 출타하면
나 스스로 지지고 볶고 끓여 먹는 때가 잦다.
코드 뽑힌 밥솥에 눌어 붙은 식은 밥이 있길래
오랜만에 짜장밥을 만들었다.
끓이는 시간이 맞아떨어졌는지 면발이 잘깃하고 매끄럽다.
흰소리 조금 보태면, 반세기 전 낙지초 경험했던 입맞춤,
머리에서 발끝 사이의 곳곳 중
달콤한 맛을 가장 잘 알아챈다는, 그 보드라운 맛과 견줄만하다.
소스와 물기도 자작하여 '면치기' 하기에 딱 좋다.
수란을 만들어 고명으로 올리려는
어마무시한 시도를 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수란짜를 하나 구하든지 해야겠다.
여하튼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만약 개였다면
아니, 개 같은 혀를 가졌다면
그릇 바닥에 새겨진 그림이 명징하게 드러날 만큼
완전 새 그릇으로 만들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지만 광이 나도록 핥아 먹은
개 밥그릇 처럼 만드느라고
한 마리 개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이 말 저 말 떠나서, 개 하나만 놓고 본다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는
개 같은 인간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거기다 나까지 보탤 일이 무에 있겠나.
TMI 하나 던지자면,
짜장밥 놓인 저 옛날식 양은 밥상은
얼마나 가볍고 가벼운지
근년 들어 웹쇼핑을 한 수많은 물건 중에
최고로 잘한 선택이었다.
상차림이 거하지 않을 땐
밥상을 무려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다.
명품이라 일컬어도 하등 손색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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