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깥 글/Poem

가을 / 송찬호

by -마당- 2023. 10. 7.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
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
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
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부치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콩 타작은

동네 장골 종형이 하는 것보다

모타리 작은 내가 해야 소출이 좋다.

콩 도리깨질은 매 하면 아니 되는 법. 

세게 두드려팰수록 멀리 튄다.

어데로 튈지 모르고 오데로 숨는지도 모른다

콩타작이 끝나면 부석 아궁에서 익은 콩이 튀고

소죽 솥, 한데아궁에서도 숨었던 콩이 튄다.

튀다 보면  전준 것도 아닌데, 사빠 찬 얼라

콧구멍에도 튀어가 불어터지기도 한다.

가을에 튀는 것은 콩뿐이 아니다.

방아깨비도 튀고 메뚜기도 튀고

갈바람에 갑신 처이 총각도 튀기 바쁘다.

젊은 시절 나도 말짱하게 출근했다가

회사 막실 놓고 가을 속으로 튄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이듬해 군대로 튀었다. 

이래저래 가을은 튀다가 볼일 다 본다

 

 

 

 

 

'바깥 글 >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詩), 부질없는 시(詩) / 정현종  (18) 2023.11.05
새와 나  (7) 2023.10.08
바닷가 마을 / 오규원  (8) 2023.09.19
아내의 계명 / 임보  (2) 2023.07.09
반세기 만에 걸려온 전화 / 임보  (6) 202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