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부터 조짐이 께름칙했다.
보안 검색을 위해 컨베이어에 태운 내 백팩이 엑스레이 모니터링에 걸렸다.
위험물이 두 개나 발견되었단다.
일순 당황에다 황당이 더해 졌다. 가방을 뒤져 보니 문제의 물건이 드러났다.
소형과 중형의 다기능 도구였다. 시쳇말로 맥가이버나이프.
기내에 반입하면 안 되는 물건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삼대 구 년 만의 해외 여행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딴나라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현역 때 업무 차 출장이나 근속 위로 여행을 포함해도, 발가락까지 거들어야 할
만큼의 횟수가 못 된다.
외국을 부러 기피하거나,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달라서, 그냥 국외 여행에 대한 선망이 크지 않을 따름이다.
폭넓게 견문을 넓히는 데는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우리 땅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재미도 솔찮아서 굳이 물 건너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에서다.
출국장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그뿐이었으면 좀 좋았을까.
적발된 도구칼은 수하물로 추가 탁송하거나 아니면, 수령 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보안 검색대의 모니터 화면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거기에
폰카를 왜 들이댔을꼬. 춘피 같이.
바깥을 자주 나다니지 않다 보니, 출입국 절차의 모든 장소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는 상식을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핸드폰을 빼았다시피 앗아간 보안 요원은, 폰 이미지 갤러리에 있는 문제의 사진을
지우는 한편 쓰레기통까지 까뒤집어 탈탈 털어냈다. 그런 후, 무식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듯한 나에게 쪼삣한 눈초리로 얼마나 잔소리를 해 대던지, 정말 생 식겁을 했다.
쭈굴시럽기도 하고,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고마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다부 돌아가삐고 싶은 생각만 들고...
이러니 내가 물 밖을 나설 생각을 도통 하지 않는 거 아인가베.
작은 아이는 학부를 마치자마자 독립했다. 하지만 떨어져 산다고 해서 부모가
돌봐야 할 일까지 싹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몇 년을 그렇게 피부양자로 있다가 드디어
우리 부부에게 볕 들날이 머지 않았다는 낌새가 나타났다. 지난해 이맘때 쯤이었든가,
아이가 이소할 준비가 되었다는 사인을 보내온 것이다. 콩깍지가 씐 젊은이들 말마따나,
아침에 눈뜨자마자 동공으로 맞아들이고 싶은 짝지를 만난 모양이었다.
어쩌면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겠다는 결정을 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렇다고 자식이
그리 결정했다는데 부모가 나서서 말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호적법으로 분리되어 저만의 호주로 등재되기 전, 가족끼리 단란하게 어딘가를
다녀오기로 합의된 것이 이번 여행을 하게 된 단초였다.
이번 나들이는, 깃발 보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우리 내키는 대로' 여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좌충우돌, 가이드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부작용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어쩌면 그 예상하지 못했던, 가벼운 불상사들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기도 했지만,
아무튼 곳곳을 들를 때마다 해프닝 칠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도착하여 첫 목적지를 향한 출발 시점부터 사달이 났다...로
시작되는 기행담은 난중에 기회 있을 때 풀기로 하고, 이쯤에서 며칠 동안 우리 땅
위에서 숨쉬고 있지 않았다는 보고 아닌 보고를 마치면서, 공수표일 수도 있는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