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를 세 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꿰지 못한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눈짓 손짓 몸짓과 '맘짓'에만 눈길을
때려 박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경 음악. 그러지
않아도 될 법한데 그래도 가슴이 후벼파이는 그 백그라운드.
찾아 보니 이 음악은 화양연화에만 쓰인 게 아니란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막귀로 들으면서도 느끼는 것은
쓰잘데없이 많다. 세 보지는 않았지만
올 봄에 일 댕기며 따먹은 산딸기만큼은 되지 싶은데
모르지. 엉뚱한 촉수까지 들이대면 나를 포함하여
장만옥을 곁눈질한 지구상 인간들 눈알만큼 될지도.
내친 김에 왕가위의 소가지까지 살펴 보니
저나 나나 저울에 달아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 만큼
영락없는 쫌생이. 내 눈에는 딱 그렇게 읽혔다.
거개의 감독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 연출을
무슨 쎄가리 잡듯 잡지를 않나, 한 장면 건지려고
여러 수십 번을 찍는다나 뭐라나.
그 양반 소가지 훑는 동안 내 소가지가 타 들어갈 판이었다.
사람이 그리 쪼잔해서 우예 살겠노 싶었다.
저 자신을 그리 파먹으면서 사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썩 싫다.
그래서 그 흐름에 어불리는 미장센을 장치하고
그래서 나 같은 속물들의 눈을 찢어 가재미로 만들고
그래서 벼라별 상이란 상은 다 발라 먹고
그렇게 그럴 듯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매구 홈파는 이런 인간은 딱 질색이다.
영화 신 몇 컷만 봐도 그래.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주를 잡을 때 모가지 위 자르고 허벅지 아래 자르고
이건 뭐 토르소 언니도 아니고, 말큼 다 잘라버리더구만.
그러고선 흐늘거리거나 실룩거리는 몸 조각만 딱
보여주는 거 보고 나는, "저건 분명 카메라 실수다."
그러니까 나는 나일 수밖에 없고
왕가위는 왕감독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참이 아닌 분명코 거짓이다.
나는 그렇게 부르짖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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