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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금초

by -마당- 2023. 9. 18.

 

 

아침에 일어나니 온 삭신이 우리하다.

께을바사서 몸을 통 꿈직이지 않다가 한몫에 일을 치니 그럴 수밖에.

어제는 조상님 머리를 '니부가리' '하이카리' 깎아 드린 날이었다. 

묘소가 점점이 흩어져 있어, 벌초 때마다 세 편으로 조를 짜는데, 

나는 해마다 개중 묘역이 넓은 곳으로 배정되어 뺑이를 친다. 

낫질을 잘해서도 아니고 한래산 같이 마음이 넓어서도 아니다.

예전부터 우찌 줄을 서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손은 맵지 않아도 에북 바지런한 근성을 눈여겨본 큰행님이 끈티

동상을 그쪽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심증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저짝 동네로 운제 갈지 모르지만 난중에 행님을 만나면 함 따져 볼

생각이다.

 

조부모 아래 팔 남매에 부모님 밑으로도 팔 남매로, 윗대는 최선을

다하셨는데 우리 항렬에 이르러 종족 번식에 게을을 피우다보니,

손들이 귀해  여즉 나는 풀 치는 기계를 짊어져야하는 처지다.

그리고 자식이라고 생산 해보이, 잘 키워서 그런지 아니면 지들이

잘 커서 그런지 몰라도, 고향 떠나 멀리 있는 손들까지 일부러 오라

카기도 그렇고 해서 이래저래 벌초꾼이 귀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벌초는 '돈내기'다. 할당된 묘소를 마치면 끝이다. 다른 곳이 덜 끝났더라도

거들지 못한다. 묫자리가 뚝뚝 떨어져 있어 거들러 가본들 벌써 마쳤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찍 마치면, 문중 모임 겸 점심 식사 자리에 먼저 가서

담소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게 된다. 

동이 트기도 전에 벌초가 시작되었다. 소똥도 아래위가 있고 찬물도

노소가 있다고 했다. 윗대 봉분부터 깎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애물을 만났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도 쉽게

대들지 못하는 생명체 중의 하나, 벌이다. 

입바른 말을 하기가 좀 켕기기는 하지만, 내가 벌벌 기어야 하는 대상은

두 가지쯤이라 본다. 추상같은 마누라와 벌이다.

 

두 대상을 맞닥뜨리면 엎드려 기는 것이 장땡이다.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벌이 머리 근처에서 윙윙거리면 배를 바닥에 깔고 건오징어처럼 납짝

엎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뭐라 시불시불거리기도 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까악 까악'하는 까마귀 울음이지 않았나 싶다.

(근거는 모리겠고 에릴 때 소 먹이러 댕길 때 종종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엎드려 있기만 해서는 안 될 상황.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한 '이 다음 알파벳 킬러'를 사용하여 얘들을 절멸시킬

것인가. 아니면 일망타진하려다 성난 벌들의 결사 항전에 부딪쳐 온 몸이

벌집이 될 것인가. 옆에서 낫질하는 종질에게 좀 두고 보자 이르고, 벌이

난무하는 풀숲 근처는 남겨둔 채 풀을 깎아 나갔다.

 

몇 대 조상인지 정확하게 짚지도 못하는 윗대 산소. 가묘 한 기를 포함해

봉분 석 장이 차지한 자리가, 삼백 평에서 평가웃도 안 빠질 만큼 너른 걸

봐서, 여기 누워 계신 조상님의 위세가 어떠했을까 쓸데없이 궁금했다.

현존 자손들은 저마다 그저 입에 풀칠할 정도건만, 팔자로 팔다리 뻗어도

넘치고 남을 넓은 자리에 누워 계실 참이었으면, 자손대대로 복을 내림하시어

우리 대까지도 '내가 내네' 하고 살 만큼 해 주시든가 안 하시고서는...

아니지, 조상 탓이 아니지. 한다 하는 풍수 뫼셔다 터 좋은 데 모시지 못한

후손들 탓이지 그게 와 조상 때문이겠노. 입에 거미줄 안 치고 살게 해 준

복만 해도 고마운 일이거늘 어데서 감히... 

 

절반 넘게 해 나갈 즈음 사촌이 큰아들을 데리고 왔다. 거드는 손이 많을수록

일은 빨리 줄어든다. 두어 시간 지나자 벌집 근처만 남기고 일이 끝났다.

벌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사실 옛날에야 뾰족한 수가 없어 배를 깔고 엎드렸다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벌집을 뭉개고 벌을 몰살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벌집에 해충

퇴치제를 뿌리면서 생솔가지 한 움큼으로 후려치면 대번에 제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조상을 엄격히 받들어 모시고 충효사상에 절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벌을 살려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상, 그것도 벌써 흙으로 되돌아가셨을 웃대 어른이 중요할까. 살아있는

벌의 생명이 더 가치있을까.  나는 후자 쪽이라 본다.

묘터를 파헤치거나 불을 놓아 풀을 태우자는 것도 아니고, 봉분 옆에

터를 잡은 벌들을 위해 한 평도 안 되는 풀을 베지 않고 놔두겠다는 것에

불과한데, 이게 과연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일까. 다 베지 못한 풀은

내년에 와서 마저 치면 되지 뭐가 문제 될 것인가. 조상님이 이를 괘씸히

여겨 나를 벌한다면, 나는 벌을 살려준 대가로 그 벌을 달게 받을 것이다. 

 

까꾸리로 벤 풀을 정리하고, 상석에 성묘 제수를 차려 제를 올렸다.

모르긴 해도 넘도 아니고 피까지 섞인 조상님인데, 후손이 차려 올린 막걸리

酒에 제철 과일을 드시면, 필경 버릇없는 후손이 쪼매 잘못했더라도

후하게 봐주지 않으실까 하는 마음에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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