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변소간의 비밀 / 박규리
십년 넘은 그 절 변소간은 그동안 한번도 똥을 푼 적 없다는데요 통을 만들 때 한 구멍 뚫었을거라는 둥 아예 처음부터 밑이 없었다는 둥 말도 많았습니다 변소간을 지은 아랫말 미장이 영감은 벼락 맞을 소리라고 펄펄 뛰지만요, 하여간 그곳은 이상하게 냄새도 안나고 볼일 볼 때 그것이 튀어 엉덩이에 묻는 일도 없었지요 어쨌거나 변소간 근처에 오동나무랑 매실나무가 그 절에서는 가장 눈에 띄게 싯푸르고요 호박이랑 산수유도 유난히 크고 환한 걸 보면요 분명 뭔가 새긴 새는 것이라고 딱한 우리 스님도 남몰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요 누가 알겠어요, 저 변소는 이미 제 가장 깊은 곳에 자기를 버릴 구멍을 스스로 찾았는지도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더 갈 곳 없는 인생은 스스로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요 한줌 사랑이든 향기 잃은 증오든 한 가지만 오래도록 품고 가슴 썩은 것들은, 남의 손 빌리지 않고도 속에 맺힌 서러움 제 몸으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 알게 되는 것이어서요 십년 넘게 남몰래 풀과 나무와 바람과 어우러진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도 하지만요 밤마다 변소가 참말로 오줌 누고 똥 누다가 방귀까지 뀐다고 어린 스님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저 구미호 같은 보살말고는, 그 누가 또 짐작이나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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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 때, 벽 하나를 두고 천장 바로 밑에 구멍을 뚫어 십 촉짜리 형광등으로 두 방에 불을 밝히던 시절, 나는 할머니와 같이 잤다. 밤에 용변이 마려우면 할머니를 깨웠다. 마루 아래 축담에서 한참 가야 할 만큼, 뒷간은 울안에서 제일 멀었다. 둥그런 독 위에 걸쳐진 판자에 쪼그려 앉아, 나는 “할매, 할매, 오데 있노?”라고 연신 불러댔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잔기침으로 기척을 하면서, 보드라운 짚을 손으로 비벼 돌돌 말아 내게 건넸다. 고쟁이 솔기를 잡고 종종거리며 방으로 올 때, 초가 이엉에 얹힌 ‘참박’은 어찌 눈부시던지 달인지 박인지 분간이 안 됐다. 별은 또 왜 그리 총총하던지……. 나는 그때 하루에 몇 번씩 할머니 눈에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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