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애잔한 글입니다. 시구를 읽으니
현장 지원 되듯 생생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제 어릴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 동네를 끼고 있던 비포장 신작로는
두어 시간에 한 번 지나갈까 말까 싶게 시외버스가 다녔습니다.
막둥이라 어리냥을 달고 살던 나는
어무이가 장사 물건하러 도시로 가실라치면
무조건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지요.
아홉 살쯤 되었을까
역시나 땡깡을 부려 어무이한테 들러붙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중1 때 입석 버스비가 칠 원이었으니까
그 당시 어린애 버스비는 오 원가량 했을까,
어무이는 돈 한푼 아끼려고 나를 들쳐 안았습니다.
학교도 안 간 얼라 겉이 보이려던 게지요.
차장 아가씨가 몰캉한가요, 어디.
"아지매, 아 차비는 와 안 내능교?"
"이 처이가 머라카노, 야는 안즉 핵교도 안 갔구마는 차비를 도라캐샀노?"
"아아가 이마이나 큰데 핵교도 안 갔다카마 말이 됩미꺼?"
"야아 좀 봐 봐라. 코 질질 흘리가지고 코밑이 이러키나 헐었다 아이가,
이런 아아가 오데 핵교를 댕기겠노?"
사전 모의한 대로 나는 내동 자는 척하고 있었는데
무다이 가심이 시쿰거리고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흐른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기억 곳간에 짱박혀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무안했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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