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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글/Poem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by -마당- 2022. 12. 13.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여보게 친구,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마음속의

무심한 미움일랑

꺼내진 말고 사세.

 

우리도 이젠 중늙은이

파도에 떠밀리는 통나무같이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남몰래 지은 죄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으니

죽은 듯이 살아서

하늘이나 바라보세.

 

눈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안 보이면

눈짐작으로라도

하늘 뚫은 별자리 하나

미리 봐두세.

내일 일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묻어두세.

 

....................................................................

 

 

지금이 중늙은 때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중늙은 시절로 돌아가 있다면

억울타 못해 허폐가 디비질 일이다.

이 나이 까지 오느라 얼마나 용을 썼는데

다시 어중간한 때로 돌아간다면

그건 모진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중간한 나이 때나 지금이나

'남 몰래 지은 죄가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라서

하늘 우러르려니 당최 면목이 없다.

탕감할 방도가 없으니 별수 없이

여생에라도 선한 마음으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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