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여보게 친구,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마음속의
무심한 미움일랑
꺼내진 말고 사세.
우리도 이젠 중늙은이
파도에 떠밀리는 통나무같이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남몰래 지은 죄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으니
죽은 듯이 살아서
하늘이나 바라보세.
눈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안 보이면
눈짐작으로라도
하늘 뚫은 별자리 하나
미리 봐두세.
내일 일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묻어두세.
....................................................................
지금이 중늙은 때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중늙은 시절로 돌아가 있다면
억울타 못해 허폐가 디비질 일이다.
이 나이 까지 오느라 얼마나 용을 썼는데
다시 어중간한 때로 돌아간다면
그건 모진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중간한 나이 때나 지금이나
'남 몰래 지은 죄가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라서
하늘 우러르려니 당최 면목이 없다.
탕감할 방도가 없으니 별수 없이
여생에라도 선한 마음으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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