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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Story

소나무 이발하기

by -마당- 2023. 3. 5.

 

게으름 피우다 끝내 한집 사는 여자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해마다 연중 두 번에 걸쳐 소나무 전정을 해 왔는데, 할일도 별로 없는 이 집 남자는

작년 한해 눈 볼꾼 감고 나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소나무 모양이 마치 노숙을 일삼은 나무처럼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말하고 보니 노숙이 맞긴 하다만, 해를 넘겨 가지를 손보지 않아 봉두난발 외양이

비렁뱅이가 웃고 갈 판이었다.

 

이 집 여자는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부아가 치미나 보았다. 화단의 나무를 이 꼬라지로 

방치해 두면, 오가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 집은 남자도

없이 애처롭게 과부 혼자 사는 집이라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억지를 부렸다.

 

별일도 풍년이다. 이 집 남자가 이 집 여자로부터 홀아비 대접 받은 지가 이태 곱배기를

넘었으니, 본인이 과부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아니, 과부 혼자

살든 홀아비 혼자 살든 아니면 둘이 합이 맞아 지남철처럼 들러붙어 살든 그게 소나무

흉물스러운 모습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해석을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션찮은 남편인데도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었는지, 제 남자로

쳐주는 게 기특해서 마지못해 사다리를 펼치고 전정가위를 잡기는 했다.

 

 

소나무가 집 화단에 이식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남자가 얘를 처음 봤을 때는 태가

제법 괜찮았다. 이식한 지 한 삼 년 되었을까, 어쭙잖게 가지를 쳤다가는 수형을 버릴까

걱정스러워  전문가에게 나무를 맡긴 적이 있었다. 소나무 한 그루 가지치기하는 데 삯이

그리 비쌀 줄 몰랐다. 기십 만원을 달라는 것이었다. 으이쿠 뜨거라 싶어 그 후론, 들지

않는 솜씨지만 이 집 남자가 손수 팔을 걷어붙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무의 인물은

일그러져갔다.

그러다 4년 전 트럭 한 대가, 애먼 나무 추한 꼴 만들지 말고 자기네들에게 성형을 맡기

라면서 온 동네 골목을 에고 다녔다. 게다가 성형수술비도 비싸지 않았다. 이 집 남자가

일터에 있을 동안 이 집 여자는, 옳다구나 하고  이 나무 의사에게 성형을 닁큼 맡겼다.

 

남자가 집에 돌아오자 여자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오늘 돈 벌었다고. 나무를 이리

손을 잘 봐 놓았노라고. 스피커로 떠들며 골목 저쪽으로 빠져나가는 트럭을 붙들어

일을 시키느라 억수로 욕봤다고. 그네들은 전문가라서 눈곱자기만한 전정 가위를 쓰지

않고, 거 왜 근육 다지는 완력기 처럼 철커덕 철커덕 잘라버리는 질쭉한 가위를 쓰더라고

말했다. 또 가위가 닿는 데마다 솔잎이 뭉텅뭉텅 보기좋게 잘려나가더라고 입에 거품을

게우다시피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웃집 소나무도 두 그루나 성형을 하고 링거

같은 영양제도 듬뿍 놔 주고 갔다고 말했다.

 

남자가 제 집 소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를 보는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점점 황소

눈알을 닮아갔다. 나무 꼴이 이상했다. 어딘가 균형이 무너진 것 같았다. 나무 형체의

맨 아랫부분 가지 한쪽이 뭉텅 잘려나가고 없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친다면 아래쪽의

둥근 원형 한 귀퉁이나 잘려나간 거나 다름없었다. 여자는 장사꾼을 너무 믿었고 그

결과는 나무의 모양을 망가뜨려놓았다. 남자는 연신 혀를 찼다. 잘해 보자고 한 일이어서

여자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날 이후, 두 가지 확연한 변화가 생겼다. 나무를 손댈 때마다 수형을 훼손할까 싶은

조바심에 마음 졸여 가지를 치던 손길이 억수로 편해진 것이 하나다. 기왕에 모양이

흐트러졌으니 더 버려봤자 거서 거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또 하나는 소나무의

키가 너무 커 버렸기도 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다른 나무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경수를 취급하는 농원을 지날 때마다 슬그머니

들어가 보기좋은 나무를 살피게 되고 시세까지 넌지지 물어보는 경우가 잦아 졌다. 

 

해를 거를 때까지 소나무를 손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 형태가 볼품없게 되고부터 정이 많이 멀어진 것이다. 그러던 차 여자의 지청구에

못이겨 올해의 가지치기를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뭔가 싹둑싹둑 자르는 행위는 은근히 재밌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같다. 잔가지

모가지를 다잡아 자를 때마다, 떡 한 개 더 줘야 할 것 같은 놈  손모가지 자르는 느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놈 싸가지 자르는 맛 정도는 충분히 느낀다. 오가는 사람들은

한 마리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 올라 써거덕 써거덕 소리도 경쾌하게 자르는 모습을

보고, 알기나 알고 하는 소린지 지나가는 말치레인지 모를 한 마디씩을 떨구고 간다.

"가지 잘 치네요. 전문가네요."

"나무가 쎤하겠네. 전지 마이 해보셨는갑다."

"반풍수는 아닌가베. 에북 잘 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흰 거짓말은 타고 났다고 본다. 개나 걸이나 장씨나 이씨나 한결같이

덕담만 하고 간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왜냐면 그 말을 등신 같이 곧이 곧대로 믿는

무녀리가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슬프게도 바로 내가 그렇다.

 

무녀린지 칠푼인지 분간이 애매한 이 집 남자는, 빗발같은 칭찬에 고무되어 깃발 날리는

마음으로 재꺽재꺽 연 이틀에 걸쳐 가지를 잘랐다. 자르고 보니 시원하긴 한데 뭔가

허전하다. 휑뎅그렁한 게 너무 강전정을 한 것 같다. 그러면 또 어떨까. 모양새도 나지

않는 나무, 군대 깎사가 졸병 머리 쥐 뜯어 먹듯 쳤으면 또 어떨가. 시원하면 그만이지.

지나는 행인 1, 2, 3은 또 덕담을 해댄다.

"처삼촌 묏등 벌초하드끼 하모 되지 말라꼬 저리 꼭딱시리 잘랐는공?"

"이 집 남자, 보기에 샌님겉이 보이두만 베라벨 재주도 다 있네."

"집에 있지 말고 오데 돈 벌로 가도 되겠다. 솜씨가 여사 솜씨가 아이네." 캐삼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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