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已矣哉
自然生來人生
將自然自然老
- 宋時烈 / 金麟厚 -
(出典 海東歌謠)
푸른 산도 절로 서 있고, 맑은 물도 절로 흐른다.
산도, 물도 자연 그대로이니,
그 속에 자란 나도 역시 자연 그대로가 아닌가
따라서, 자연 속에 절로 자란 이 몸이
늙는 것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리라.
친구 보러 갔는데
친구는 간 데 없고
놀랍구나
한 점 자연만 더하여 있더라
<20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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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자하게 떨어져 뒹구는, 저 자물실 것 같은 풍경 보려고 작년에도 길을 나섰다.
오동도를 가다 보면 진월IC를 만난다. 그 나들목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오른쪽 진입로로 핸들을 꺾는다. 작년에도 그랬다. 나들목에서 채 십 분거리도 안 되는 망덕 포구 인근에는, 도사도 아닌 것이 도인처럼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 고적하게 살아가는 지우, 本空 영식이가 거기에 숨을 붙이고 있었다.
마음먹고 친구를 찾을 때는, 쌀 포대나 두꺼비 한 박스 아니면 삼겹살 몇 근이라든지, 현관을 발로 차 노크를 해야 할 자세로 갔었는데, 오동도 가는 길에 느닷없이 들르다 보니 작년에는 그러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리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집이 비어 있었다.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오동도로 향했다.
작년 오동도 동백 걸음은 허탕이었다. 8년 전, 자지러지게 나뒹굴던 그 동백을 보러 그 후 세 번을 찾았는데 끝내 그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동도를 등지고 귀갓길에 올랐다. 재차 친구 집을 들르기 전 전화를 했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씻고 벗고 하나밖에 없는 친구 아들 산이였다. 친구가 병원에 드러누워 있단다. 코로나 팬데믹 절정의 시기였고 달려가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집으로 왔고 다음날 친구의 부음을 들었다. 기분이 정말 젖 같았다.
듣자마자 광양으로 달렸다. 산이와 통화할 때 한소끔 쏟았기에 눈물이 더 나지는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모든 초상집이 그랬다. 유족과 가까운 일가 외 조문이 까다로웠다. 산이 어깨만 몇 번 두드려 주고, 영정을 뒤로한 채 되돌아 왔다.
두루 절친이었던 백고와 다음날 다시 빈소를 찾았다. 술을 마셨다. 쏟아부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기는커녕, 처마시게 만든 친구만 떠올랐다. 영정 앞에서 또 한바탕 곡을 했었지 싶다. 인근 여관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익일 친구를 불에 살랐다. 그리고 충남 공주 어느 키 작은 소나무 아래 묻었다.
그렇게 친구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서쪽으로 바람 쐬러 갈 때마다 꼭 들르곤 했던 망덕리 친구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진도나 해남, 아니면 또 오동도를 가고 싶을 때 어디를 잠시 들렀다 갈까. 모가지째 떨어진 동백처럼 성급하게 훨훨 떠나버린 친구가 몹시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 부럽기도 하다.
친구 본공은, 광양제철 그 좋은 직장 일찍 막실놓고 어느 한 촌구석에 홀로 묻혀 살았다.
마치 깨달은 스님같이 살다 간 그의 깊은 뜻을 나는 영영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가 왜 그리 살았는지, 살고 싶었는지 어렴풋 알 것도 같다.
공부 좀 할 거라고 껍죽거릴 때 필수 인문과목 리포트 과제로 쓴 글 제목이, <똥 살리기 땅 살리기> 였다.
그 글 내용에 나왔던 '친환경변기'를 친구 집 다락에서 만났다.밑이 막힌 좌변기 옆에는 겨가 소복히 담긴
들통이 있었고 정말 인분 냄새라곤 나지 않았다. 지붕에서 받은 빗물을, 부들이나 부레옥잠이 심겨진
작은 수로를 통해 정화시켜 생활용수로 활용한, 진정한 환경보호자였다. 그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몸으로 실천한 친환경생태실천자였다.
타이어 구르는 대로 떠돌다가 느닷없이 쳐들어간 때가 한두 번 아니지만, 언젠가 망덕 포구에서 담아 온
석화 한소쿠리를 숯불에 구워 밤새 소줏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얼마나 퍼마셨던지 다음날 화순 운주사
찻집에 들러 꽃차 힘을 빌어 겨우 숙취를 벗어나기도 했다. 역마살이 서쪽으로 뻗치면 항상 간이역
같이 들렀던 망덕리 00-0번지, 지금 그집에는 지우 본공이 없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허숭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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