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의 마음 / 함민복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1996)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그 공터가 각중 광활하게 커져버려 당신이 어느 귀퉁이에서
놀고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서,
망초와 개망초는 무엇이 다르고 샤스타데이지와 마가렛 차이라든지
상수리. 갈참. 굴참. 떡갈. 신갈. 졸참 열매와 이파리는 또 우찌 다른지
쥐똥나무는 왜 쥐똥나무고 애기똥풀은 어찌하여 애기똥이 붙었고
애기똥풀 미나리아재비는 사촌 같이 보여도 사돈에 팔촌보다 멀다는
그렇지만 내 속에 살고 있는 당신과 나보다는 가깔울 수도 있다는...
도대체 어느 모롱이에 숨었는지 알기나따나 해야
조목조목 가르쳐 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인가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