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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Story

덤퍼를 맞닥뜨리다

by -마당- 2023. 7. 27.

 

덤퍼를 맞닥뜨렸다고, 고속도로나 아니면

편도 일차선 국도 같은 데서 마주친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나는 골로 가도 수없이 갔을 것이다.

지도는커녕 네비에도 등록되지 않은 길,

그러니까 일방 길을 만들고 있는 길이기도 하고

길을 만들기 위해 대충 닦아 놓은, 차선조차 없는

롤러코스터같이 어지러운 길 위였는데.

 

고속국도 건설 공사 일부 구간

군데군데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 터널을 뚫는 공사장

영차와 공차 덤퍼가 쉼 없이 들락거리는 곳

그런 곳을 나는 주일이 멀다 하고

쥐 아기 풀방구리 드나들 듯 댕기는데.

 

일을 하다 보면 덤퍼만 만나는 게 아니고, 올여름

실성한 놈 지랄하듯 퍼붓는 작달비도 걸핏하면 만났는데.

고스란히 그리 퍼부으면 시간당 100mm는 되고도 남을

장대비가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중에

다따가 덤퍼를 코앞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시간당 10km에도 못 미치는 속도였지만

비 사이로 길 찾기 바빠 덤퍼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왔다리 갔다리 하는 와이퍼 사이로

상방 60도로 눈을 치켜보니 덤퍼께서 멀끔히 내려다보는데

보아하니 한참 전부터 내 통태를 보고 있었을 터

이건 뭐 거인을 맞닥뜨린 걸리버 꼴이라

웃지도 울지도 못할 판에 정신은 이미 몸 밖을 뛰쳐나가버렸는데.

 

급성 멘붕 상태에서 차를 옆으로 비킨다는 것이

움푹 팬 물 구덩이에 오른쪽 앞발이 쑥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빠지직 하고, 간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는데,

황소 오줌발보다 굵게 자유 낙하하는 빗발에, 도무지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 후진 기어를 넣어 어찌어찌

수렁에서 기어나오긴 했다. 덤프가 내려다 볼 때는, 코딱지만한

무당벌레가 꼬물거리며 발버둥 치는 것 같이 보였을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길을 터 주고 비포장 길을 내려오니

무언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 차를 세워 상태를 살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뿌지직 소리를 나게 한 원인의 결과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오른쪽 앞문과 뒷문 아래에 길게 걸쳐 달린

사이드 스커트가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는 게 보였는데.

 

재수 옴 붙은 날이란 게 이런 날을 두고 하는 말일끼라. 천재지변으로

생긴 일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비를 만났든

덤퍼를 맞닥뜨렸든 그건 다 핑계고, 순전히 내 잘못으로 손상된 것이라,

입이 몇 개라도 주어섬길 말이 없었다. 나를 고용한 주인에게 물어내라고

긍갈을 부리는 짓은, 더군다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상황은 씁쓸했지만 하늘은 그런 정상을 참작해 주지 않았다. 억수비는

아까맨키로 여전히 쏟아지고, 차에 다부 타서 숨을 고르고 빗발이

숙지근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그 시점에 얄궂게도 천장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운치있게 들릴 건 또 뭐꼬.

버블디아와 스틸하트의 She's Gone을, 부활과 권진아의 Lonely Night을

겨끔으로 듣다가 이내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폰을 꺼내 빗소리를 녹음했는데.

내게 어울리지 않는 구라식 음악을 끄집어내 차 안에 지그시 깔고는.

 

비가 소강에 들자 스커트를 마저 떼어 내 빠져버린 핀을 대충 끼워맞추니

그래도 그날은 쏘다녀도 되겠다 싶게 복원은 되었는데, 그날 일 마치고

집에 와 다시 뜯어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스커트 아랫부분은 일부

아작이 났고 고정 핀도 몇 개 부러져 서비스 센터에 알아보니, 올바로 손보려면 

사임당 님 피 빤 모기를 채집하여 쥐라기 복제하듯  십여 분 넘게 소생시켜

갖다 줘야 할 판이라, 그냥 내 손으로 좀 더 야물게 끼워맞춰 해결 보는 걸로

결론을 내렸는데.

 

순접으로 때울 건 때우고 붙일 건 붙이고, 손바닥으로 쳐서 안 되는 건

발길로 줘 차서 억지로 갖다붙이니, 한두 군데 단차가 지는 곳은 있어도

어지간히 보기 싫지 않을 정도는 되었는데. 여태 살면서 여인네 스커트를

잡아당기다 찢어 본 적은 있어도 찢어진 치마를 고쳐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그 걸 해낸 것인데, 그러니까 이담에 누가 살째기 박아 줄 때까지

기다려도 될 만큼은 모양이 나왔다는 것인데. 이참에 굳은 돈으로 쇠고기

한두 근은 충분히 끊을 수 있다는 얘기렸다.

 

그나저나 차 지붕에 얼마나 싸구려 철판을 씌웠는지 녹음한 것을

나중에 들어보니, 이건 뭐 도단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아니고...

 

 

TalkAudio_합천.m4a.m4a
0.46MB

 

 

<Before>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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