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전부터 내가 차를 모는 거리는 한 달에 삼천 킬로를 조금 밑돈다.
영업용이 아닌 일반 차량이 이 정도면 억수로 많이 타는 경우일 것이다.
며칠 전 단골 정비소에서 변속기 기름을 교체하다가 배기구에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을음이 많이 묻어 있었다.
동호회 카페에서 주워 들은 정보가 생각났다. 머플러에 그을음이 많으면
DPF(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만약에 손상되었으면, 교체 부품값만 해도 두꺼비 기십 박스 값을 넘고
공임을 더하면 또 기십만 냥을 더 보태야 한다고 들었다.
지체 없이 서비스 센터에 예약하고 오늘 점검을 받으러 갔다.
요즘 자동차 업계는 워낙 경쟁이 심해서 그런지 서비스 센터의
고객 서비스도 별 여러 개짜리 호텔이나 거의 맞먹는 것 같다.
집에서 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게 추출될 것 같은
커피 기계에서 브라질 캡슐을 룽고로 뽑아들고 점검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고객 대기실에 있으면, 점검이나 수리 과정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해준다. 점검을 마쳤다는 메시지를 받고 얼마지 않아 담당 미캐닉이
고객 휴게실까지 찾아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뚜렷하게 균열이 생긴 DPF가 찍혀 있었다.
아이구야, 우야모 좋노! 싶었다. 구수하게 즐기던 커피 맛이 쓰게 느껴졌다.
무상 보증 조건이 구입 후 5년 이내거나 주행거리가 10만 킬로 이내여야 하는데
내 차는 이미 두 조건 다 물알로 간 뒤였다. 졸지에 거금이 나가게 생겼다.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출혈 강도가 장기판의 마馬 한 마리가 죽어 나갈 판이
된 것이다.
잠시 후 차를 인계 받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그런데 핸들에 얹힌 내 손은
사뭇 들떠 있었다. 잘하면 콧노래까지 흥얼거릴 뻔 했는데 그러진 않았다.
어쨌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제법 그럴듯하고 쌈박했다.
거금을 들여 수리를 하느니 십만 킬로를 넘게 타고 했으니, 이참에
고물차를 처분하고 새 차로 바꿔야겠다는 그런 짜릿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럴 꿈이라도 꿀 형편이면 걱정도 안 했을 것이다.
아까 정비사가 내게 말해준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기분좋게 맴돈다.
정비사 : DPF가 나갔으니 어쩔 수 없이 교체해야겠습니다.
나 : 그럼 우예야 되나요? 비용은 울매나 들까예?
정비사 : 고객님, 차를 구입하신 지 몇 년 되셨나요?
나 : 보증 기간 5년은 벌써 지났삤습니다. 정비 기록을 보면 제 차 정보가 있을 낀데요.
정비사 : 아, 예. 그럼 정확하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혹시 7년 지났나요?
나 : 아매 7년까지는 안 됐을 낍니다.
정비사 : 음, 그렇다면 7년도 안 됐고 주행거리가 11만 6천 킬로쯤 되니까,
고객님 차량은 다행히 무상 수리 대상입니다.
나 : 예에에~? 5년에 10만 키로 아잉교?
정비사 : 예, 그렇긴 합니다. 그렇지만 주요부품은 무상 수리 기간이 좀 깁니다.
본사에 부품을 주문해 놓았으니 나중에 도착하면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와하하하! 그러니까 DPF의 무상 보증 기간은 7년에 12만 킬로랜다.
살다가 이기 무신 복이고. 맨날 호갱 취급만 받다가 우째 이런 일이.
대창 같이 얇은 복에 내게도 이런 일이 다 생기다니 거 참!
며칠 전만 해도 타이야 사기를 당했다고 만천하에 썰을 풀고 쿨쩍거렸는데,
오늘 그 사기 당한 액수보다 너댓 배나 많은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건 뭐
본전만 뽑은 게 아니라 횡재했다고 해야 맞겠다.
세상사 참 요지경이고 참으로 웃기고 자빠질 일이다.
그래 참 웃기고 자빠지고도 남을 일이다. 된장.
오늘의 아바구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오죽 좋았을까.
흑~ 호사다마까지는 아이더라도 씁쓸한 반전 스토리가 지둘리고 있었으니...
휘파람 불며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열 찰나 우편물 하나가 우편함에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내 납세 정신이 얼마나 공고한지, 이제 내 사는 도시도 모자라, 대구시에서까지
나서서 살피는구나. 올 들어 도대체 몇 건이나 한 건지...ㅉㅉ 봉급 서나꼽째이
받아 가지고 과태료 내다가 볼일 다 보게 생겼다.
와중에 다행인 것은, 즈그마이보다 우편함을 내가 먼저 봤다는 거....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