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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가성비 똥

by -마당- 2023. 12. 2.

 

 

처음엔 기차표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도시에서 서울로 나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름 전에 예약을 시도했는데 이미 매진되었다.

손수 운전으로 가는 수밖에.

 

휴게소에 한 번 들러 아점 먹고 차 마시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 대략 여섯 시간,

창구에 접수하고 예약된 저선량CT 촬영하는 데

걸린 시간이 십 분쯤이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집 까지 논스톱으로  달린 시간이

얼추 다섯 시간.

그러니까 십 분도 채 안 걸리는 몸 사진 찍으려고

열한 시간을 도로 위에 있었다는 얘기다.

가성비 똥이다.

 

.............................................

 

몇 년 전, 퇴직 후 즈그마이와 함께, 생애 마지막

정밀건진이라 치고 비용을 꽤 들여 몸을 샅샅이 훑었다.

그때 나온 결과지에, 둘 다 몸 안 어디에 깨알같은 결절이 있어서

매년 크기의 추이를 봐야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엄밀히 보면 매년 검사하지 않아도 될,

하찮은 증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들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나중에 자기들 뒷감당하기 좋게 처방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어쨌든 매년 서울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상경하기가 번거로워 우리 지방에 있는

같은 재단의 지방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CT 의료기는 비슷한 것일 거라서 촬영 결과물은 서울에서

찍은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판독이 문제였다. 젊은 의사는 모니터를 한참 살펴도

결절 부위를 잘 찾아 내지 못했다. 서울 병원에서 촬영한

CD 자료를 펼쳐 같이 대조해 보면서도 그랬다. 모르긴 해도

임상경험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별수 없이

올해도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다.

 

서울에 있는 병원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유명 병원은,

환자가 일반 외래로 접수하여 의사 진료를 받은 후 CT를 찍으면

건강보험과 실비보험 혜택을 함께 받을 수 있다. 대신 날을

달리하여 병원을 두 번 들락거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지방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어디 예삿일인가.

 

반면, 건진센터를 이용하여 검사를 받으면 미리 예약하고

하루 만에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절차는

건강 보험과 실비 보험 혜택을 땡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건강보험공단 체계인지 병원의 장삿속인지

모르지만 앵꼽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울면서 겨자를 잘근잘근 씹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에 살아야 장땡이라는

세간의 말을 다시 한 번 에누리 없이 인정할밖에...

 

 

 

 

다행일 것 까진 없지만 아이들은 수도권에 산다.

거리가 가깝지 않아 서울 쪽으로 가면 멀리 간 걸음이 아까워 들르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부모랍시고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이들이 나이 들수록 이눔들 심기!를 살피는 게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한사코

오라고 손짓하는 말이 정겹다. 만약 손주들이 할매 할배가 저거 집 젙에 까지 왔단 걸

알았으면 아마 우린 바로 귀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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