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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술안주

by -마당- 2023. 12. 17.

 

즈그마이와 즈가바이는 한 지붕 아래 살아도

한 천장 아래서 잠들진 않는다.

사유인즉 즈그 나매 코 고는 소리 때문이라 쿠지만

캐자고 들면 꼭 그 까닭만은 아닐 거라 본다.

 

한창 펄펄하던 시절, 우짜다가 틀어져 한방을 쓰지 않고

아침에 서로 딴 방에서 나오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고,

즈그마이 씨어마씨는 밥상머리에서 징키 나무라셨다.

내우지간에 각방 써 버릇하면 몬 쓴다꼬.

 

그러니까 즈그마이는, 살아생전 씨어마씨의 지엄한 당부를

묵살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봤자 꿩 지만 춥다 캐라.

자다가 오덴가에 다리를 얹자야 잘 자는 사람인데 

베개나 쿠션 같은 게 나매 허북다리보다 낫겠냐 말이지.

 

거다가 인자 종족 번식 임무를 벗어던진 지도 오래고

팔베개만으로 양이 안 차던 시절도 에북 지났고

자다가 저짝 다리가 내 다리 위에 걸쳐져 쥐 내릴 일도 없고

그러니 나도 뭐 짜다라 짜칠 것도 없다.

 

그란데 밉다 쿠모 이래도 밉소 칸다 쿠더마는 요사이

즈그마이가 딱 그짝이다. 자기 묵고 싶은 거 다 자실라 카고

자기 하고 싶은 거는 다 할라 쿤다.

그라마 지 꺼는 지가 하면 될 꺼로,  한 이불 덮고 자지도 않음시로

필요할 때는 아시동상 부려먹드끼 즈가바이를 부려먹는다.

한 숟가락 덜 드시고 몸종을 두든가 하면 될 낀데, 아무리

제 나매를 시뻐봐도 그렇지 해도 좀 너무한다 싶다.

이를텐면 이런 것들이다.

 

........................................................................

 

"두루치기 만들어서 한잔 하까예?"

 

즈그마이 말은 우야든둥 해석을 잘해야 한다.

샐쭉이 쪼갬시로 이리 말하마, 나더러 뭘 우찌 해보라는 얘기다.

자앙 시키던 계란말이는 질렸는지 인자 해 달라는 안주 메뉴도 달라졌다.

여지껏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만 주문한다.

속으로는 주먹을 쥠시로 이런 기 솟구쳐 올라도

공恐처가일 따름인 나는 충직한 하인처럼 명을 받든다.

 

"그랄라요? 재료는 오데 있는데?"

 

그렇지만 알아서 척척 하는 자동까지는 아니고 반자동쯤이랄까. 

즈그마이가 거실에서 리모컨 누르듯 나를 원격 조종하면, 오류율

삼 할쯤의 알고리즘으로 코딩된 AI 로봇처럼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이다.

 

 

 

한날은, 냉동고에 얼려 놓은 전어를 내 앞에 쑥 내밀며,

 

"이것도 함 해 보실랍니꺼?"

 

또 술 한잔 찌뜨리자는 얘기다. 이래저래 맨날 술이다.

 

"우짜모 되는데?"

 

즈그마이의 하명에 나는 또 아야 소리 한마디 않고 납짝 엎드린다.

 

"뼈째 쌍글지 말고 포로 떠 보이소. 울매나 잘 뜨는공 함 보그로."

 

 '세꼬시'로 썰면 치아 사이에 뼈가 찡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즈그마이를 위해 주방에서 무얼 만들어 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거나 화려하지 않다. 처음에는 짜장라면부터 시작했었지 싶다.

라면이나 짜장라면 조리를 우습게 보았다간 큰코다친다. 물을 끓여

면과 분말수프를 넣고 대충 끓이는 것은 잡식성인 내가 먹는 방식이고,

까탈스러운 즈그마이에게는 이게 통하지 않는다.

 

적절한 간과 화력 조절에 따른 쫄깃함과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부수적인

재료, 그러니까 대파, 청량고추, 수란이나 푼 달걀 등을 마침맞게 조합하여

끓여도 어지간해서 맛있다는 평을 듣기가 어렵다. 어떨 땐 디럽고 앵꼬바서

하던 거 엎어삐고 요릿집에 주문해버리고 말까 싶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 엉길 걸 엉겨야지 그랬다간 몇 날 며칠 집口石이 절간 같이 징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삐낀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라면을 거쳐 계란말이 과정도 마스터하고 두루치기 정도는

거실 코치를 받지 않아도 엉가이 해낼 수 있게 되었지 싶다. 헌데

몰캉하게 여겼던 계란찜은 녹록하지 않았다. 적당히 밴 간은 기본이고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질감과 아삭한 듯 만 듯 상큼하게 씹히는 맛을

아우르게 하는 것은 정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머리띠를 두르지

않았다 뿐이지 아직도 욜씨미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구러 즈그마이 음식 콧대가 차츰 높아짐과 비례하여 내 조리 솜씨도

시나브로 상위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처럼 반복 학습 효과까지 더하여 급기야, 어시장 횟집 칼잽이

'시다바리' 디신할 정도로는 보인다는 게 즈그마이 평가다. 

 

 

 

우좌지간 요즘 나는 즈그마이 등쌀에 안주 맹그는 실력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러다 얼마 안 가 마리아주를 빚어내는 경지에까지 다다를지도

모르겠다.

 

마리아주(Mariage)의 원뜻에는 궁합이란 의미도 있다고 한다.

즈그마이캉 내캉 궁합이 쬐매 맞는 것은 그나마 술이다. 다른 궁합은

저 밑에 하빠리 점수를 맴돌아도 술 궁합은 요사이 거의 떡상이다.

그것도 나의 가없는 노력으로, 술 근처에도 몬 가던 사람을 소주 반 병

정도의 레벨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술 말고 다른 모든 궁합지수는

백 점 만점에 삼십 점에도 못 미칠 것이다.

 

간혹 즈그마이가 소주 반 병을 넘어 눈이 게슴츠레 까부라질 만큼 마셔도, 

내가 기대할 거라곤 1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뭘 바라고 술안주를 만드는

게 아니란 얘기다.

가끔, 행랑채 머슴도 아이고 내가 이리 살아가꼬 머하겠노 싶은 한숨도

나오지만 그나마 이러구러 술판 벌이는 낙으로 세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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