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9 밥상머리 이바구 호박잎에다 깻잎에 김치를 곁들여 아점을 먹었다.밥을 입에 떠 넣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이파리 김치를 밥 위에 김처럼 펼쳐 쌈 싸듯큼지막이 말아 입이 미어지도록 욱여넣는 것이다.밥 따로 김치 따로 먹어도 맛은 거기서 거기겠지만심리적 미각을 무시할 수 없어 그렇게 쌈을 싸서 먹는다.이런 식사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즈그마이는걸핏하면 간섭한다. “앞으로 며느리 보면 절대 그래 묵지 마이소.제발 좀 칼클케 드이소.” 라며. 밥과 찬그릇 중간에 매운생선잡탕이 놓였다. 잡탕이라 한 까닭은, 매운탕으로 조리하면 맛날 생선들만골라 넣어 끓이는 게 아니라, 제수 음식으로 나눠온자반이나 전유어, 만두, 동그랑땡 할 거 없이 몽땅집어넣어 끓이기 때문이다.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느끼고 싶어, 그리 끓이지 않았으면 .. 2024. 6. 9. 말의 가지_2 며칠 전, 친구 모임에서 한잔 꺾고 있을 때 메시지가 왔다. "내일 혹 시간 있으십니까?“ 설령 시간이 없으면, 슈타인형에게 부탁하여 없던 시공時空을맹글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분의 톡이었다. 그런데 다음날은,빼도 박도 못할 일정이 있어 그 콜에 응할 수 없었다. 슈타인형이현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옆에 있다 해도 용빼는 재주가 없기도하겠고, 선약은 함부로 내팽개칠 수 있는 가벼운 무게가 아니란 걸알기 때문이다.(데이트 무산의 슬픔에, 그분 눈에 물이 넘쳐나지 않았기를...😁) (잠시 딴 데로...)문자를 보낸 이는 이제 겨우 두어 번 만난 사이다. 그럼에도스무 번 넘게 본 사람, 아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우 같이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두 번 만날 동안 내가 푼 수다는, 서먹서먹한 사람과 나눈 몇.. 2024. 5. 13. 말의 가지 오래전 친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친구와 처음으로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날 이후 나는,그와 가끔 보기는 했을지언정 술은 절대 마시지 않았다.그러니까 그와 오붓한 술자리를 가진 것은 그때가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까닭은 그의 ‘말’ 때문이었다. 술잔을 주고받은 서너 시간 동안 그는 잠시도 말의 끈을놓지 않았다. 마술사 입에서 오색 테이프가 끝없이 풀려나와급기야 오장이 딸려 나올 때까지 이어질 것 같은 느낌,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것 같은신기한 재주까지 더불어 갖추고 있다는 것도 그날 알게 되었다.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말을 늘어놓으면 결론을 향해곧장 직진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가지가 몇 갈래로 흩어졌다모이기를 반복했다. S형으로 빙 두르기도.. 2024. 5. 9. 의문 없는 일 패 젊었을 때 나는 무척 얘볐다. 입이 밭았기 때문이다. 군대 갈 무렵엔 무려 백 Kg의 절반에 그칠 정도였다. 이삼 Kg만 적으면 체중 미달로 현역병으로 입영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었다. 당시, 장래 즈그마이 될 공산이 큰 사람이 젙에 있어서 그리 함 해보까 하는 유혹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기필코 조국에 몸을 바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입영 열차에 올랐다. 터닝 포인트는 전역 이후에 찾아 들었다. 제대한 후 지금까지 나는 입맛을 잃어 본 적이 없다. 본래 입맛이 없었기 때문에 잃었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지만 아무튼 제대 후로 식욕이 왕성해 진 건 사실이다. 몸살 감기에 시달려도,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먹는 건 평소와 다름없었다. 국방부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나이 들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 식성이 변.. 2024. 4. 20. 꽃눈 낙화는 비처럼 떨어지지 않고 눈 같이 날린다고 내게 말했다. 꽃눈이라 해야 한단다. 꽃비든 꽃눈이든 부르는 사람 마음이지만, 나는 적어도 죽을 때까지는 진보나 보수 편이 아니라 꽃눈이라 불러야 옳다는 사람 편이라서 지상의 모든 이들이 꽃비라 일컬어도 나는 죽자고 꽃눈이라 할 것이다. 2024. 4. 15. 늦은 봄맞이 꽃이 피는지 지는지 넋 놓고 있다가 오랜만에 사진기 챙겨 나섰는데 야산 봄꽃들은 벌써 막물이었다. 얼레지 치마 끝자락은 하얗게 시들어 말려 올라가버린 뒤였다. 개중 철 모르고 늦게 핀 몇 녀석과 눈 맞추고 놀다가,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2024. 4. 1. 사월 사월은 오지랖이 그네 타는 춘향이 치마폭 같아서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짓밟히지 않는 가슴이 없고 사월은 다리가 동구 밖 미루나무 같아서 삽짝 안이고 밖이고 닿지 않는 발걸음이 없고 대문 뒤 돌계단 돌 구멍에 핀 민들레, 저 꽃은 희한하게 봄만 되면 싹을 틔웠습니다. 대문을 들어설 때, 저 꽃을 밟을까 봐 일부러 조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샛노랗게, 하도 눈부시게 피어 있어 눈길을 다른 데 둘 겨를이 없었거든요. 며칠 전, 저 돌계단을 뒤로 하고 집을 옮겼습니다. 둥지를 옮기고 보니 아쉬운 건, 두어 평 남짓 남새밭과 나무 심긴 화단과 저 돌계단 같은 것들... 올해도 어김없이 민들레가 고개를 내밀지 궁금하여 슬그머니 옛집을 기웃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 4. 1. 그냥 놔 두이소. 근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냥 놔 두이소. 좀 있다 내가 하께예." 내가 주방 기물통에서 뭔가를 하고 있고, 즈그마이는 목하 TV에 빠져 있을 때 주로 듣는다. 예전에도 설거지쯤이야 자주 거들긴 했지만, 반백수 직위를 거머쥐고부터 좀 더 잦아졌다. 즈그마이는, 내가 정짓간에서 얼쩡거리면 왠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없는 행핀에 사발이라도 깨 먹을까 봐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면, 신성한 자기 영역을 침범 당할 것 같은 은근한 불안감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냥 놔 두이소. 좀 있다 내가 하께예.", 하도 그러 쌓길래 한 번은 그냥 놔 둬 봤다. 그랬더니, 에엔충, 아나 곶감아~였다. 흰머리 늘고부터 말만 앞세우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심지어 부려 자시려 드는 것 같기도 하다... 2024. 3. 29. 늘그막 보험 즈그마이와 티각태각하는 것들 중 하나가 보험입니다. 즈그마이는 걱정이 좀 많습니다. 하지만 걱정이라면 저도 그리 꿀리지 않습니다. 하나가 필요하면 한 개 반 정도는 준비해야 마음이 놓이고, 십 원이 필요하면 십오 원 정도는 마련해 둬야 초조하지 않습니다. 약속 시간도 항상 여유 있게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술도 너댓 병 넘게 쟁여 놔야 마음이 푸짐해 집니다. 하지만 여유 있게 채비하려 해도 잘 안 되는 것도 있습디다. 가령 외딸고 고적한 데다 집을 하나 더 구해 놓는다든지, 배우자 아닌 여자 사람 한 둘이 더 여유 있게 젙에 둔다든지 하는 그런 건, 왠지 잘 안 됩디다. (돌 날아오는 소리...ㅎ) 하여튼 즈그마이가 보험에 기대려는 심리는 좀 과합니다. 실비보험은 물론, 암보험, 치아보험, 화재보험,.. 2024. 3. 9. 이전 1 2 3 4 5 6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