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묘하고도 재밌다.
어느 종족의 언어라도 비등할 것이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음절 하나에 따라 뜻이 상반되기도 하고, 하늘과 땅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 조사 하나에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며칠 전 현장 입회를 갔었다.
신축 건물 현장에, 한전韓電 전기를 공급 받는 날이었다.
전기 공급이 개시되는 수전受電 시 현장에 있어야 하는 행위는,
내가 몸담은 일터에 주어진 하나의 법적 책무이기도 하다.
그날 공급 전원의 전압電壓은 2만 볼트급이었다.
절연 활선 작업 차량을 동원한 작업자들은 모두
같은 문구가 새겨진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해도 될까? 하지 말자. 해야 할까? 실천하자.'
'이리 갈까, 저리 갈까'의 스트레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리 갔다가 아니면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해도 될까?'의 물음에는 간혹 위중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2만 볼트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물질을 만져야 할 때
해도 될지의 의문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덤볐다가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내 피 색깔이 새파랬을 때,
'해도 될까?'를 우습게 여겼다가, 북망산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키려 할 찰나, 요행히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진저리가 쳐진다.
그래서 전기 종사자들은 의심증이나 갈등증후군을 가진 이가
많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골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 고정관념이, 일 같잖은 사소한 일에까지 작동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