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종일 일했다.
일이란 게 어찌 보면 팔자 늘어지게
싸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함양에서 하동 쪽으로 가던 길이었다.
도로수 은행나무가 대부분 발가벗었고,
갓길은 잎들이 요이불처럼 덮혀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노랑 일색이 아니라
연녹과 노랑이 섞여 있었다는 것.
그저께 바람이 그리 불더니 버타다가 씨루다가
맥진하여 낙하한 것들이었다.
은행잎이 시루떡같이 깔렸는데 어찌 그냥
지날 수 있나. 여측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문수사* 단풍잎만 해도 그렇다.
발갛게 물든 단풍 일색보다 덜 바랜 연초록이 함께
어우러져야 나는 보기에 좋았다. 그러니 은행잎도
연노랑과 연둣빛이 어불려 있으니 오죽 살가운가.
비니루 쪼마이 들고 길가에 열없이 쪼그려 앉아
설되어 떨어진 은행잎을 주워담았다.
그리고 카매트를 새것으로 개비했다.
어제는 모르겠더니 오늘 차에 오르니 향이 은은했다.
밤사이 살짝 발효가 되었을 것이다.
누구나 잊지 못할 향기에 얽힌 기억이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소죽 냄새가 그리웠다. 지금도 고무신 까꾸로 신은
사람만큼이나 간절하다.
엄동에 한 넙디기 떠서 부르튼 손등에 문대던
딩기 넣고 끓인 소죽. 소죽을 떠올리면 옛날 시골집이
흑백 사진으로 펼쳐진다. 나를 볼 때마다 눈에 주워 넣으시던,
저짝에 계신 할무이가 이짝으로 다부 걸어 나오시고,
아궁이에 궈먹던 파삭 고매가 긴 세월을 거슬러 신질로
지금 내 입으로 들어온다. 그뿐 아이다.
짚동에 쌓였던 짚단 몇 단 소죽 만들라꼬, 작두에 들이미는
뼈마디 굵고 악센 손아귀가 연질로 떠오르면, 한 번만에 뎅강
잘라야 하는 사명으로 내장의 힘까지 끌어올려 작두 손잡이를
내리누르는, 새앙쥐 좆자루만한 어린애가 아리게 되살아난다.
이짬치 되면, 반 세기가 언충 지나 무뎌질 대로 무뎌진 코에서도
더운 김이 피어 오르고, 용하게 눌려 있던 누선이 엉구 터지듯
넘치고 만다.
짚단이 왜 단칼에 잘려야 했는지, 한 번만에 자르지 못했을 때
꼬장캐이 같이 쪼삣한 눈길로 어쩌자고 나를 그리 쑤셔댔는지,
그 까닭을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답을 알고 있을 존재는
이미 떠나버렸고, 언젠가 때가 되어 저 동네 가서 물어본들
내가 기어코 듣고 싶었던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싶으잖다. 누구나
잊지 못할 향내가 있듯, 누구 할 것 없이 콧등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애달픈 기억도 한두 개쯤 지니고 있는 법이다.
어쨌든 어릴 때 새벽녘, 소죽 솥에 불을 지피고 꾸벅꾸벅 자불다 보면
소두방 가상사리에서 눈물이 흐른다. 소죽이 다 된 것이다.
남바가지 들고 소두방을 뺄쫌이 열면 모캐불 연기 같은 김이 서까래까지
몽게몽게 퍼져 오른다. 그때 그 냄새. 그 구수한 소죽 내음.
지금 차 안에는 그 향내가 가득 찼다.
사람마다 후각의 느낌이 다를 것이라서, 다른 코가 맡으면 어떤 향기의
기억과 맞닿을는지 몰라도 내게는 그렇다.
어떤 고급 향수보다 향수鄕愁를 건드리는 들큼 새큼한 냄새...
이 맛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리 덜떨어진 짓을 일삼는지도 모른다.
* 문수사 : 고창에 위치한,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