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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

가을 바이러스

by -마당- 2023. 11. 15.

 

 

 

 

다시 올 때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빚쟁이나 각설이뿐이 아니다.
가을도 그렇다. 와야 할 것들은

죽지도 않고 기어이 오고야 만다는 것
그래서 기다리지 않아도 가을인 것이다

해마다 뻔한 짓거리 연년이 구태한 전술이지만
이 몸서리치는 가을,

한 치라도 느슨하거나 몰캉하게 보면 코 깨지는 가을

억새풀 날씬한 허리에 친친 감겨 홀리지 말 것
밤 벌레 구슬픈 가락에 애간장 후벼 파이면 지만 손해다.

가을 바이러스는, 영혼의 피를 핥아먹는 각시손

입술 같아서 훠이 떨치지 못하고 질질 빨거나
부여안고 나자빠졌다가는 이 잔망스러운 가을,
빨아대는 나도 모르고 빨리는 너도 모르게
우세 칠갑 잔치에 들러리가 되고도 남는다는 것.

세상 갈피 모르고 여차여차 꾸무럭거리다 하마

치명적인 첫눈까지 엎쳐져 늦가을 세균이

가슴 한복판에 깃발을 꽂으면 푸르뎅뎅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고랑고랑 죽자 한들

죽을 수도 없는 것

이 죽일 놈의 가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느니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자는 듯 납작 엎드려 있을 것, 아니면
남은 열정 모두 퍼부어 낱낱이 불태워버리든지
도저히 그것도 아니면 낙엽을 끌어 덮고 그냥

골로 가 버릴 것.

 

<200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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