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Story34 실수 큰 실수를 했다. 내가 좀 침소봉대하고 호들갑스러운 면이 있다는 건 안다. 그렇다 해도 '큰 실수'라는 전제는 그리 크게 부풀리지 않은 표현이다. 달포 전부터 아내로부터 부탁 받은 게 있었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취미로 배우는 과정이 있는데 올 하반기 과정도 계속해야 하니 나더러 접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 이르고 접수 개시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나절 느지막이 일어나 하는 일 없이 꿈지럭대다가 낄낄거리며 누군가와 SNS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예? 도서관 하반기 수업 신청했습니꺼?" 거실에서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호칭은, 오빠도 아니고, 여보도 아니고 성조가 있는 중국어처럼, 뒤를 길고 높게 빼는 '예~~?'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고 귓등으로 흘리려다.. 2023. 8. 24. 버금 차次 큰 아이의 이름에 차자次字가 들어 있다. 뭐든 으뜸으로 앞서지 말고 한 발짝쯤 처지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마음이나 지금이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사진도 그렇다. 사진에 조금 심취했을 때도 사진은 내 취미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가끔 차석만 꿰찼을 뿐 가장 먼저는 아니었다. 사진을 하면서 알게된 여러 지인 중 매우 좋아하는 찍사님이 둘 있다. 한 분은 오산에 기거하는 분인데 프로이시다. 또 한 분은 대구에 사는데 이분의 감성사진에 나는 뿅 가기를 밥 먹듯 했다. 하려들면 얼마든지 주울 수 있는 작가 타이틀을 그저 거추장스러워 줍지 않은 분이리라 짐작만 할 따름이다. 처음엔 이외수나 반칠환 닮은 시인이겠거니 착각도 했다. 어쨌든 매우.. 2023. 8. 24. 피차일반 너도 삶이고 나도 삶이다 하루살이나 인생살이나 거기서 거기 2023. 8. 11. 덤퍼를 맞닥뜨리다 덤퍼를 맞닥뜨렸다고, 고속도로나 아니면 편도 일차선 국도 같은 데서 마주친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나는 골로 가도 수없이 갔을 것이다. 지도는커녕 네비에도 등록되지 않은 길, 그러니까 일방 길을 만들고 있는 길이기도 하고 길을 만들기 위해 대충 닦아 놓은, 차선조차 없는 롤러코스터같이 어지러운 길 위였는데. 고속국도 건설 공사 일부 구간 군데군데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 터널을 뚫는 공사장 영차와 공차 덤퍼가 쉼 없이 들락거리는 곳 그런 곳을 나는 주일이 멀다 하고 쥐 아기 풀방구리 드나들 듯 댕기는데. 일을 하다 보면 덤퍼만 만나는 게 아니고, 올여름 실성한 놈 지랄하듯 퍼붓는 작달비도 걸핏하면 만났는데. 고스란히 그리 퍼부으면 시간당 100mm는 되고도 남을 장대비가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중에 다따가 덤퍼.. 2023. 7. 27. 막일 나의 밥벌이 이력은, 노무자 삼 할에 기술자 직무가 칠 할이다. 그러니까 몸으로 때우는 일과 머리를 함께 써야 하는 일을 지겹게 했다는 의미다. 이제는 정년을 졸업하고 용돈 벌이 삼아 한 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일한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 용돈이지 현역 때, 퇴직 후 탱자탱자하며 지낼 만큼 넉넉한 밥벌이를 못한 바람에 그걸 벌충하는 짓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얼마전 모처럼 재밌는 막일을 해 보았다는 썰을 풀려고 서설을 좀 늘어놓았다. 사흘 전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우는 전화를 받았다. 잠을 즐겨야 할 시간에 오는 전화 치고 반가운 소식이 얼마나 될까. 빗나가면 좋을 예상은 어지간해서 빗나가지 않는 법. 정해진 일 외에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 2023. 7. 16. 이전 1 2 3 4 5 6 7 다음